
「Marche fatale」는 무모할 만큼 대담한 일탈입니다. 제 예전 작품들 중 다수는 세계 초연에서 스캔들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인정받았는데, 이번 곡은 그런 예전 작품들보다도 오히려 제 팬들을 더 언짢게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Marche fatale」는 양식적으로 제가 걸어온 작곡의 길과는 거의 무관합니다. 이 곡은 거리낌 없이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퇴행까지는 아니더라도 현대 문명이 일상의 '실용' 음악에서 여전히 붙들고 있는 공허한 상투어구로 되돌아간 것에 가깝습니다. 반면 20, 21세기 음악은 이미 오래전에 낯설고 새로운 음향 세계와 표현 가능성으로 나아갔습니다.
핵심어는 '진부함(banality)'입니다. 창작자로서 우리는 이를 경멸하고 피하려 하지만, 새로운 미학적 성취 안에서도 값싼 진부함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많은 작곡가가 은근히 진부함을 받아들였습니다. 모차르트는 일부러 '서투르게 실패한 척'한 6중주 「Ein musikalischer Spaß」(음악의 농담)를 썼습니다. 베토벤의 「Bagatellen」 작품 119는 "이 소품이 그 유명한 베토벤의 작품이라고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출판사에게서 거절당했습니다. Mauricio Kagel은 이를테면 익살스럽게 「Märsche, um den Sieg zu verfehlen」(승리를 놓치기 위한 행진곡들)을 썼고, Ligeti는 「Hungarian Rock」을 썼습니다. Stravinsky는 「Circus Polka」에서, 당시 피아노 연탄곡으로 작곡되었던 그 유명하고 지나치게 대중적인 슈베르트의 군대행진곡을 인용하고 왜곡했습니다.
그렇지만 제 「Marche fatale」를 이 예들과 나란히 놓아도 될지는 저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일상 속 유머를 받아들입니다. 우리 중 몇몇에게는 이 일상이 유머 없이는 달리 견딜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음악에서는 유머를 신뢰하지 않으며, 오히려 유머와는 별 상관이 없는 더 깊은 명랑함이라는 개념에 저 자신이 훨씬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집단적으로 상무적이거나 축제적인 분위기를 강요하다시피 하는 행진곡이란 애당초 부조리한 것 아닐까요? 그것이 도대체 '음악'이기는 한 걸까요? 행진을 하면서 동시에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을까요?
결국 저는 '부조리함'을 진지하게 — 어쩌면 씁쓸할 만큼 진지하게 —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벼랑 끝에 선 우리 문명의 정체를 폭로하는 상징으로서 말입니다. 온갖 무기력하게 만드는 악마들의 블랙홀로 향하는, 멈출 수 없어 보이는 그 길은 '평온해질 수 있습니다.' 저 자신과 제가 음악을 만드는 주변 환경에 오랫동안 요구해온 것은 '음악 아닌 것(non-music)'을 쓰는 일입니다. 그로써 익숙한 음악 개념이 거듭 새롭고 다르게 재정의되고, 그렇게 이곳에서 — 어쩌면 배신하듯 — '탈선'함으로써 콘서트홀이 허상의 안전으로 도피하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모험의 장소가 됩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나머지는 — 생각하는 일입니다.
(Helmut Lachenmann, 2017)
| 작곡가 | Lachenmann, Helmut |
|---|---|
| 출판사 | Breitkopf & Härtel (Digital) |
| 페이지수 | 14쪽 |
| 편성 | Piano (피아노) |
| 고유코드 | EB 9253D |
| 장르 | March, Orchestral piece |
| 시대 | New music (post 2000) (현대(2000~)) |
| 작곡연도 | 2016/17/20 |
| 연주시간 | 약 8분 |
| 사이즈 | 23 × 30.5 cm |
| 최소주문수량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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